내가 사랑한 책

인생의 역사/신형철

러빙빈센트 2023. 2. 20. 21:10

이 책은 시화다. 신형철 작가는 시화의 제목 '인생의 역사'를 무슨 의미로 지었을까. '역사'는 국어사전에서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생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라는 의미다. 시는 어느 한 사람만이 겪을 수 있는 특수한 감정에 관한 것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희노애락 사건들의 총체다, 그러니 모든 시는 인생과 역사에 관한 것이다, 이런 의미가 아닐까. 나의 해독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이것이 나라는 한계다.

유독 힘든 날이 있었다. 그럴 때 시를 읽었다. 눈물이 쏟아졌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견디기 힘든, 누구에게도 터놓기 어려운 마음을 시인은 이미 겪어 봤다는 듯 받아 주었다. 이제 알겠다. 시는 인생의 역사책이어서다. 그리고 그때 나는, '시는 나를 사랑해주는 것 같다'라고 조금은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시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시는 나를 사랑한다. 시가 나를 사랑한다.'

책 속에서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안쓰러워 그 곁에 있겠다고 결심하는 마음에 어떤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하나.

첫 책에 "나는 문학을 사랑한다. 문학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어쩔 수가 없다"라고 쓴 적이 있지만, 그래도 나를 조금은 사랑해준다고 느끼는 장르가 시다.

'시는 나를 사랑한다. 시가 나를 사랑한다.'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첫째, 가치 있는 인식을 생산할 것. 좋은 글이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취향이나 입장이 아니라 인식이기 때문이다. 둘쨰, 정확한 문장을 찾을 것. 뜻한 바를 백 퍼센트 담아 낼 수 있는 문장이 써질 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공학적으로 배치할 것. 모든 문장이 제자리에 뫃이도록 만들어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 " 이 말과 비슷한 충격을 안긴 것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다음 말이었다.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짓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


인생의 역사/신형철(2월)

'내가 사랑한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의 끝 여자친구  (0) 2023.03.28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이 있다/노라 에프론  (0) 2023.03.04
눈물 한 방울  (0) 2023.02.11
빈센트 나의 빈센트/정여울  (0) 2023.02.07
탁월한 스토리텔러들  (0) 2023.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