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파는 리어카를 보면 귤이 먹고 싶다던 수연이가 떠오른다. 수연이는 유난히 먹을 것에 집착하는 아이였다. 몇 년 째 꽤 꾸준히 공부방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다. 한없이 작고 모자란 선생이지만 이 일을 계속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진짜 선생님이 아니라 저소득층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를 하는 대학생 말이다. 지금도 변함없지만 그때는 교육봉사가 대학생만이 누리는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은 열 가지 안에 꼭 들어가는 일이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나이가 되고 나서는 ‘나눔의 철학’을 마음에 품게 되었다. 열을 벌면 최소한 셋은 세상에 내놓으리라는 다짐을 했다. 그것은 단순히 물질뿐 아니라 재능과 시간을 포함했다.
몇 년째 선생님이라 불리지만 진짜 선생 노릇하긴 정말 힘들다. 올해로 16명의 아이들과 만났다. 모두 다 소중한 추억이지만 재작년 이맘때 만난 중학생 셋이 특별하다. 여중생은 처음이었기에 첫 만남부터 긴장을 많이 했다. 사춘기 소녀들은 감정적으로 예민할 터라 신경이 많이 쓰였다. 걱정과는 달리 소녀들은 마음을 활짝 열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알아갈수록 밝은 미소 뒤에 숨겨진 그늘과 마주할수록 마음은 무거워졌다. ‘저소득층, 편 부모 가정, 학업부진, 생활태도불량’. 아이들을 설명하는 이 수식어는 당시 경력 2년 차에겐 너무 진부해서 매너리즘에 빠져버렸는지 모른다.
교육청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매번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갔다. 하지만 유달리 먹을 것에 집착하는 수연이는 때론 부담스러웠다. 늘 부족해서 또 사달라고 요구하는 아이였다. 어느덧 한 학기의 마지막과 함께 아이들과의 만남도 끝이 왔다. 마지막 날이니만큼 먹고 싶다는 것을 사주었다. 맛있게 먹고 함께 골목길을 걸어 나오는데 귤을 파는 행상이 보였다. 갑자기 수연이가 귤을 사달라고 했다. 열 개에 천원.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디저트까지 하나씩 사준 후라 거절했다. 아이는 실망했겠지만 나로서는 먹을 것을 잘 사주는 선생님으로만 기억되기는 싫었다. 나쁜 버릇이 들어 나중에 만날 다른 선생님에게도 똑같이 대할 것 같아서 사달라고 떼를 써도 단호하게 거절하곤 했었다.
그렇게 수연이를 먼저 집에 들여보내고 집이 먼 다른 아이와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연이는 편 부모 가정이라 엄마가 안 계시기 때문에 집에서 밥을 잘 못 먹고 다니며, 예전에는 친구 집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려서 혼이 난 적도 있으니 수연이의 버릇없는 행동도 선생님이 이해해 주시라는 어른스런 말이었다. 아... 하는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수연이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때로는 식탐이 너무 많다 싶을 정도로 간식에 집착하던 아이. 늘 맛있는 거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의 모습과 거절하던 내가 겹쳤다.
정작 아이가 원한 것은 수학 공식 따위를 알려주는 재능기부자가 아니었다. 도란도란 둘러 앉아 귤 까먹으면서 ‘오늘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오늘 급식 메뉴는 뭐였니?’ 하며 일상을 나누는 관심과 사랑이 더 필요했으리라. 그때는 돈 천원이 아까워서라기보다 나쁜 버릇 들이면 안 된다는 오만한 생각이 있었다. 아이를 훈육과 계도의 대상으로 내려다보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장 잘 안다고 믿었다. 수연이의 배경은 알고 있으면서도 그 아이의 아픈 마음까지 어루만져주지는 못한 것이다. 그날 귤 한 봉지 손에 쥐어주며 필요할 때 항상 옆에 있겠다고 말하지 못해 후회가 된다.
의외로 세상을 잘 안다고 여기는 오만함이 세상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우월한 자의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세상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오늘도 영화 ‘도가니’를 보고 우월한 자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본다. 남의 아픔에 동정의 눈물을 흘리기는 쉽지만 한번이라도 그들을 위해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봤는지 묻고 싶다. 연민의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이웃의 아픔을 슬픈 영화쯤으로 여기는 무지한 눈물이 부끄럽다. 진지하고 심오하게 우리 이웃을 돌아볼 때이다.
2011년 12월 22일 씀. 대학생 때 우연히 들은 강의에 과제로 낸 이 글 한 편으로 주목받게 됐고, 이후 글 쓰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으니 내겐 의미 있는 글이라 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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