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 노래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나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느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이제서야 시집을 샀다. 신경림 시인이 오늘 별세했다. 내가 기자로서 쓰고 싶은 기사는 바로 이 '가난한 사랑노래' 그 자체다. 이 시를 쓸 때의 시인의 마음과 감정 그대로. 플롯 그대로. 이 모든 것을 담아 산문으로, 이야기로 전개된 기사. 독자가 외롭고 힘든 누군가를 헤아려보게 하는 글. 타인의 고통에 눈물을 왈칵 쏟게 만드는 글. 한 글자 한 글자 애틋하게 나아가는 그런 글.나는 이런 글을 쓰기 위해 기자가 됐고,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해 놓지 못하고 있다.
오늘에서야 알았다. 자신의 힘든 일을 말로 털어내거나 글로 적어낼 수 있는 건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매일 쓰는 일기장에도 감히 쓸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얼마 전 신문 인터뷰 기사에서 이런 문장을 읽고 따로 적어뒀는데, 이제서야 마음에 와닿는다. '고통을 이겨내려는 용기.' 그렇다. 고통을 어딘가에 새길 수 있는 건 그걸 이겨낼 힘과 용기가 있을 때나 가능한 거였다. 나라고 왜 모르겠는가. 긴 시간 지나고 보면 그냥 헤프닝일 뿐일 거란 걸. 지금은 이 모든 것을 그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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