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책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러빙빈센트 2023. 10. 2. 19:40

사랑을 잃었단 이유로 지난여름 나는 내가 '나를 찾는 술래처럼' 방황했다. 매일 쓴잔을 마시면서도 달콤한 유혹에 취한 척 웃었지만 속으로 울고 있었다. 진은영 시인의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에 수록된 시 '청혼'이 왜 내겐 아픔일까. 우리가 했던 맹세는 별들처럼 희미해지고 나는 고통을 잊기위해 아첨하는 시간들에 매번 졌기 때문. 이제 무너지지 말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말자. 시월의 시작, 달밤 아래 다시 맹세를 해본다. 일어서자. 이 말을 난 참 좋아한다. '내 사랑이 너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잠시 흔들렸지만 이제는, 내 사랑을 지켜줄 수 있을만큼 강인한 사람이 되자. 언젠가. 단 한 사람을 위해.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청혼/진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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