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스토리텔러들/ 이새롬 박재영 지음
2월 첫 주에 읽은 책. 이 책은 동아일보 이새롬 기자의 저서다. 이 선배는 내가 올해부터 활동을 시작한 좋은 저널리즘을 고민하는 기자들의 모임 '저널리즘Q클럽'의 첫 세미나에서 강연을 했는데, 그때 인연으로 책까지 사서 읽게 됐다. 이 책의 부제 '미국 기자들의 글쓰기 노하우'처럼 미국 저널리즘에 대해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밑줄 그으며 읽었다. 감상이나 서평을 남기기보다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고 몇 번이고 곱씹어 보는 게 중요할 것 같아 책 속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문장을 옮겨 놓는다.
저널리즘. 어렵다. 미국 저널리즘이 어쩌면 한국 언론 환경에서는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사회와 문화, 정치 환경이 다르니까. 하지만 한국 언론의 풍토는 잘못된 것이 많고 바뀌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 저널리즘의 원칙을 배울 필요가 있다. 배운다고 당장 바뀔 수는 없겠으나, 잘 안 될지라도 알고 있으면서 바꾸려고 조금씩 노력하는 것과 아예 모르고 노력도 안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스토리는 단순히 이야기가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맥락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보도 가치가 있는 중요한 무언가를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매개'라는 것이다.
기사는 실감 나는 장면 묘사를 통해 독자를 현장의 세계로 데려갈 수 있어야 한다.
기자들은 문장 하나라도 그것을 어디서 듣거나 참조한 것인지 명기한다. 외부 자료를 출처 없이 가져다 쓰면서 직접 취재한 것처럼 보도하면 미국 언론계에선 기자건 에디터건 해곳감이다.
기자들은 옳고 그름을 전하는 것이 아닌, 사실관계를 충실히 알려서 독자들이 각자 현명한 의사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여기다. <아칸소 데코크라트 가제트> 편집인 월터 허스만 주니어는 기자의 역할이 진실을 결정해 드러내는 게 아니라, 확인 가능한 사실을 보도해 독자들이 진실을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그럴듯한 사람의 그럴듯한 발언이라도 문서 등 다른 경로를 통해 해당 인물의 발언 내용을 최대한 교차 검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다른 경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을 거치는 것은 제삼자를 통한 교차 검증이 취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취재원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정보를 듣고 이야기한 거라면 그 누군가를 찾아가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아느냐"를 재차 물으며 원출처를 알아봐야 한다. 취재원이 하는 말을 그대로 옮기지 말고 그것이 '정말로 사실인지' 지뵹하게 근거를 파고들어 확인하라는 것이다.
미국 기자들은 취재원으로부터 단순히 반론만 듣지 않는다. 기사에서 어떤 내용을 다룰 것인지 충분히 설명하고 당사자가 기사 주제를 이해했음을 확실시한다. 이때 회자되는 문구가 '놀라지 않게 하기 원칙'이다. 기사가 발간됐을 때 이해당사자 누구도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기자가 취재원에게 물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질문을 알려주려고 한다"고 포문을 연다. "인터뷰를 한 뒤에 '제가 다른 누구를 또 만나야 하나요?'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할수록 더 많은 시각을 얻을 것이고, 더 많은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더 나아질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핵심을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한다. 미국의 작가 윌리암 진저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를 지속적으로 묻고, 글을 쓴 뒤에는 '내가 그것을 이야기했는가?'와 '그것이 이 주제를 처음으로 마주하는 누군가에게도 명확한가?'를 자문하라고 말한다. 그는 "독자들의 마음에 남기고자 하는 하나의 요점이 무엇인지 결정하라"며 "어떤 길을 따라야 하고 도달하고자 하는 종착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나은 아이디어를 줄 뿐 아니라 분위기와 태도에 대한 결정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명확한 생각이 명확한 글을 만든다.
기자들은 흔히 '하늘 아래 새로운 기사는 없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반복돼 온 문제나 인류의 보편적인 욕망을 거시담론이나 통계, 설명으로 시작한다면 기사가 새로울 수 없다. 하지만 작게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구의 어떤 상황이나 면모를 조명하며 이야기를 전개하느냐에 따라 기사는 무수한 빛깔일 수 있고,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다. 노인 학대의 현황이나 심각성에 대한 담론은 어느 기자라도 언제든 쓸 수 있지만, 조카의 확대에 못 이겨 휴일 밤에 엄혹한 날씨를 뚫고 구걸을 하러 간 노인들의 비참한 이야기는 이들을 취재한 기자만이 쓸 수 있는 독창적인 이야기이며 고유의 느낌을 인상 깊게 전달할 수 있다.
미국 저널리즘 스쿨 에디터는 좋은 리드의 조건으로 여섯 가지를 제시했다.
①독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②핵심 사실과 정보를 포함한다.
③인물, 취재원, 주제를 소개한다.
④기사의 분위기, 문제, 접근법, 속도를 설정한다.
⑤익숙한 형식을 사용하더라도 독창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⑥좋은 취재를 보여준다.
그는 긴 기사를 작성할 때 마주하는 가장 큰 어려움이 "기자들이 종종 자신이 쓴 글과 사랑에 빠져서 독자들은 바쁘고 기사를 덮기 위해 안달이 났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스토리는 목적지에 도달하며, 목적지는 독자의 마음에 반향을 남길 최후의 기회다.
독자들이 기사를 '읽을지'는 리드에 달렸지만, 기사를 완독한 독자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엔징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스의 핵심을 잘 전달하면서도 모두가 알고 있는 천편일률적인 보도 내용을 벗어나 특색 있는 요소와 부가적인 정보를 찾으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글쓰기를 끝냈을 때 마감 시간을 앞두고 있지 않으면 책상에서 떨어져서 글을 놔두고 운동, 수면, 산책, 독서와 같은 다른 것을 하라. 돌아왔을 떄 더 신선한 눈을 가질 것이다."
기자들은 취재원으로부터 얼마나 성심성의껏 취재 협조를 받았건 간에 철저하게 독자를 위해 기사를 쓴다.
기사는 독자들에게 '읽히기 위해'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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