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사람들

안녕히 가세요

러빙빈센트 2020. 10. 20. 14:04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어디로 가셨을까. 어렸을 때는 종종 뵈었는데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는 만날 기회가 없었다. 엄마에게 둘째 외삼촌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고, 문병 후 점점 악화되고 약해진 외삼촌의 소식을 전해 들은 것만이 내가 외삼촌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전부였다.
 
갑작스러운 부고라고 할 수는 없겠지. 요양원에 계셨으니까. 10년 전 외할아버지가 암 투병으로 고생하시다 하늘로 돌아가셨는데. 외갓집에선 둘째 외삼촌이 제일 먼저 외할아버지를 따라갔다. 외가댁이 멀어 자주 찾아뵙지 못했지만 지금도 외할아버지는 문득문득 떠오른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키우던 개 흰둥이가 어찌나 외할아버지를 좋아하던지, 흰둥이를 사랑스럽게 안아주던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사진처럼 남아있다.
 
두 분 하늘에서 만나셨으려나. 이 세상에서의 고통, 괴로움 모두 잊고 그 세상에서는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아니면 이 세상에 다른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 전생에서와 같은 고됨은 덜 하고 덜 고생하며 사셨으면 좋겠다. 외할아버지와 둘째 외삼촌은 유독 엄마에게 마음을 많이 쏟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마음이 더 간다. 
 
엄마가 스무살쯤  갑자기 많이 아팠을 때도 외할아버지는 키우던 소를 팔아 자식을 살렸고 십 리 길을 오가며 자식을 간호했다. 키우던 소가 죽었을 때는 먹지 말고 땅에 묻으라 할 정도로 동물을 사랑하셨던 분. 조금 더 내가 그 분께 인생의 지혜를 묻지 못한 것이 아쉽다. 

외삼촌도 엄마가 20대 때 상경해 오갈 곳 없을 때 자기 품에서 거두어주셨다고 한다. 엄마를 살린 집안 어른 두 분께 나는 잘하지 못했다.  지금 이렇게 떠나 보내니 마음이 저릿하다. 두 분의 생이 결코 고통만 많지 않았기를 뒤늦게 바랄 뿐이다.
 
외할아버지는 일제치하, 625전쟁 고된 역사 속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외삼촌은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로 피와 땀, 눈물로 두 자식을 길렀고, 현생의 고통을 술로 잊었다. 고된 육체 노동에 조금씩 병드는 것도 몰랐던 외삼촌은 70살이 되기도 전에 눈을 잃었다. 특전사 출신에 누구보다 강인했던 어른이 어린아이처럼 두려움에 떠는 것을 보고 나는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온갖 인생의 어려움과 고난, 시련을 겪고 또 이겨낸 두 분께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외할아버지, 외삼촌 감사했어요. 안녕히 가세요 그러나 마침표는 찍지 않겠어요 또 만나요. 
 

'내가 사랑한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깨비 강아지  (0) 2023.01.19
무중력의 사랑  (0) 2023.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