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빙빈센트 2023. 1. 19. 07:41

아파트에 살면 가끔 에어컨 실외기와 베란다 창 사이 조그만 틈에 비둘기나 까치가 둥지를 짓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어느 날 오후, 베란다에 나가보니 우리 집 에어컨 실외기 틈에도 길고 얇은 나뭇가지 대여섯 개가 쌓여있었다. 까치 한 쌍이 나뭇가지를 날라다 놓은 것이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까치는 길조라 기분이 좋았다. 이 자리가 안전하고 포근하다고 여겼나 보다, 내일이면 새가 둥지를 완성하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고는 깜빡 잊고 밤을 지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베란다에 나가 까치집 공사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어제 까치가 쌓아놓은 나뭇가지는 온데간데없고, 그 틈 사이에 빨간 노끈이 묶여 있었다. 아빠가 둥지를 짓지 못하도록 조처를 한 것이다. 엄마와 나는 새끼만 낳고 떠날 건데, 올겨울만 지내도록 내버려 두지 그랬느냐며 아빠를 원망했다. 마침 새들도 얼어 죽는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뒤였다. 혹여나 날씨가 추워서 찬바람을 막아줄 공간을 찾아든 건 아닐까, 열심히 지어놓은 집이 한순간에 사라졌으니 얼마나 허탈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빠의 항변도 일리가 있다. 까치는 더는 길조가 아니라 유해야생동물이라는 것이다. 겨울이라 에어컨을 트는 일은 없지만, 실외기를 새가 쪼아서 망가지거나 창 주변에 아무 데나 배설하고 소음을 유발할 수도 있다. 실제로 까치가 사과나 배를 쪼아 먹는 탓에 농가 피해가 막심하고, 도시에서는 조류정전의 주범이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지자체에서는 국가 예산을 투자하여 까치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특히 제주도에 사는 까치는, 불청객을 넘어서 제주도 생태계를 파괴하는 ‘폭군’으로 미움을 산다. 현재 제주에 서식하는 까치는 약 13만 마리인데, 매년 2만여 마리를 포획한다고 한다. 까치가 감귤 등 제주 농사를 망치고, 다른 조류의 알과 파충류를 포식해 제주도 고유 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하기 때문이란다.

 

농촌에서나 도시에서나 까치는 불청객이다. 아빠가 까치가 둥지를 짓지 못하게 방해공작을 폈으니 더는 집을 지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오전, 푸드덕 날갯짓 소리가 들려 베란다에 나가보니 까치 한 쌍이 또 나뭇가지를 물고 왔다. 이미 날라다 놓은 나뭇가지를 다 버렸는데도 또 물어다 나르기 시작한 것이다.

 

까치가 농산물을 쪼아 먹어서 농민에게 피해를 주고, 정전을 일으킨다니 어제와는 마음이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슴이 아프다. 환경을 파괴한 건 인간이 먼저 아닌가. 무분별하게 환경을 파괴하고 산을 깎아 아파트 단지를 세우면서, 까치가 둥지를 틀 숲과 나무를 잃고 삶의 터전에서 내몰린 것이 아닌가. 아빠에게 부탁했다. 노끈까지 쳐놨는데 또 집을 짓는 거 보니 이젠 어쩔 수 없다고, 그냥 내버려 두자고.

 

그날 오전, 베란다와 실외기 사이에는 튼튼한 노끈이 하나 더 늘었다. 이젠 어떻게 해도 둥지를 틀 수 없다. 그 까치 한 쌍은 마음씨 좋은 집주인을 만나 다른 집 에어컨 실외기 틈에 둥지를 지었을까? 아니면 다른 곳에 터전을 잡았을까? 한 때는 길조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까치가, 이제는 어디서나 불청객이 돼버렸다니. 무허가 판자촌 철거하듯 둥지를 허물어 버리고 까치를 포획하는 사람에게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갈 곳을 잃은 새의 모습 또한 보았다. 인간이나 새나, 쫓고 내몰리고 내몰고 쫓기는 삶.

 

수많은 나뭇가지를 날라다 얼기설기 집을 짓고, 그 안에다 진흙이나 이런저런 푹신한 것들을 물고 와서 깔고, 알 낳을 자리를 준비한다는 까치.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인간이나 새나 새끼를 낳고 키우는 그 마음 또한 매한가지일 텐데 싶은 게 가슴이 찡했다.

 

2013년 1월 28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