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나 사연 없는 사람은 없기에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좋은 콘텐츠? 창작자 포용 공간 넓어야” 사장 송은이의 일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좋은 콘텐츠 창작자 포용 공간 넓어야 사장 송은이의 일 인생은 상황극... 비극 속에서도 웃는다 선한 영향력 에서 선한 스며듬으로 끝까지 사랑하고 소통하는 것의 힘, 보
biz.chosun.com
글쟁이로 살면서 내가 가장 쓰기 부담스러운 게 인터뷰 기사다. 정치부 때나 증권부에서도 인터뷰 기사를 많이 썼는데 내가 100% 만족하는 글은 없었던 것 같다. 송은이 배우의 말처럼 '이 지구에 평범한 사람은 하나도 없기에'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른 사연과 변수를 갖고 있기에 정형화된 공식을 갖고 대입해 활용하기가 어렵다. 숫자 가지고 쓰는 일상적인 경제부 기사야 1년 정도 공부하면 어느 정도는 단련이 되는데, 사람에 관한 기사는 늘 그렇지가 않다.
김지수 선배의 인터스텔라 시리즈는 볼 때마다 감탄한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싶다. 연재하는 모든 글에 정형성이 없다. 어떻게 하면 발끝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김지수 선배의 질문과 송은이 배우의 답변 속에서 조금은 힌트를 얻은 것 같다.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관찰. 김지수 기자의 말처럼 '고정된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인터뷰이 앞에서 '액상화 되는 것'.
김지수 선배는 송은이 배우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가 유재석과 한 프레임에 잡힐 때도, 이영자나 김숙, 김신영과 특별한 포맷 안에 있을 때도, 나는 이 사람의 말과 표정이 프로그램 전체에 드리우는 유연한 '액체성'에 감탄하곤 했다."라든가 "빵빵 예측불허의 웃음 폭탄이 터지는 힘센 버라이어티에서조차, 송은이는 크지 않은 액션으로 ‘누구도 눈여겨보지 못한 웃기는 작은 순간’을 포착해내곤 했다. 그가 있는 곳에선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않을 때 싹이 트는 작은 웃음들이 비눗방울처럼 투명하게 솟아올랐다." 그녀를 오랜 기간 관찰하고 있었던 거다.
훌륭한 인터뷰어로 성장할 수 있는 원천은 사람에 대한 호기심, 관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만의 언어로 저장해두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아닐까 싶다.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송은이 배우에 대해 막연하게 그렸던 내 속의 희미한 무언가가 이 기사를 읽으며 마치 판화처럼 분명한 모습으로 마음에 각인됐다. 모든 사람은 자기 생의 완벽한 철학자라는 걸 존중하고, 인터뷰이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쉬운 언어로 말하도록 이끌어내는 것. 그게 성숙한 인터뷰어의 조건 아닐까.
대학생 시절, 아주 오래 전에 읽었지만 지금까지 마음에 남아 있는 사람에 대한 글이 있는데 고종석의 에세이 '여자들' 중 후지타 사유리 … 엽기: 자유의 씨줄과 사랑의 날줄' 편이다. 지금도 이 글이 가끔 생각나 책장에서 다시 꺼내 읽기도 한다. 근데 처음 읽었을 때 이미 느꼈던 것 같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 관찰이 좋은 글을 탄생시킨다는 것. 그 후로 나는 그녀의 삶을 응원하게 됐다.
기사 중 내 마음을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줬던 문장을 옮긴다.
"비극의 틈새로 희극이 삐죽 들어오면 또 견딜만하거든요"(송은이)
"그때는 경험치가 적으니 몰랐어요. 힘을 뺄 때 좋은 게 나온다는 걸"(송은이)
"'은이'라고 부르기만 해도 기분이 동글동글 해지잖아요"(송은이)
태생이 동그라미여서 였을까. 각지지 않은 몸, 모나지 않은 말투는 격변의 일터에서도 그를 동그랗게 굴려 유연하게 착지하도록 만들었다.
"들어보면 어느 하나 사연 없는 사람이 없어요. 이 지구에 평범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송은이)
"인간에 대한 애정과 배려의 결이 고운 사람들. 결이 맞으면 방식이 달라도 어울려서 물결을 만들어요"(송은이)
더 큰 물결 속에 나를 두고 보는, 겸손이 몸에 밴 사람들.
"찰리 채플린이 그랬다면서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저는 이제 그 말이 완전히 이해가 됩니다. 자기가 어떤 상황극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떨어져서 보면, 좀 힘을 빼고 웃게 되더라고요(웃음)." (송은이)
시간이 지날수록 인생이 옳고 그름으로 짠 ‘시시비비’가 아니라 슬픔과 웃음으로 이어진 ‘희희 비비’의 날들임을 일깨워주는 송은이. 성실하게 웃음의 공간을 창조해내는 멋쟁이 희극인들이 고맙다.
영향력이 아닌 '스며든다'는 표현에 송은이의 정수가 있는 것 같았다. 어느 한 일방이 힘을 가하고 완벽한 모델이 돼서 끼치는 영향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흘러가고 닮아가며 조금씩 다가서는 삶. 부모 자식의 관계가 '선한 영향력'이 아니라 '선한 스며듦'으로 서로를 철들게 하듯.
2022-02-26 쓰다.